정겨운 풍경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

풀그림 2011. 11. 23. 23:01

10여년전 내소사 주지스님으로 부터 새벽같이 전화 연락을 받았다.

허겁지겁 달려 가보니 내용인 즉슨 내소사 뒤 관음전 오르는 길에 돌계단을 놓고 싶다는 것이다.

이야기한데로 아는 분을 통하여 견적을 받아보니 칠팔백이면 108계단을 놓을 수 있다는 말을 주지스님께 전한 후 한달쯤 후에 또다시 연락을 받았다.

직접 돌계단을 만들어 줄수 있냐는 것이었다.

한푼이라도 절약하려는 스님의 뜻을 알고서는, "주지스님이 저를 믿어준다면 못할게 뭐있냐!"는 말로 손수 108계단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 날 이후 내소사 뒤편 계곡을 뒤져 계단돌에 적합한 묵직한 돌을 찾아 계단을 놓기 시작하여

6개월이 넘는 기간을 통하여 우여곡절 끝에 완성하였지만

금전적 보상(?)이 너무 적어 허탈했던...그후론 내소사에 가보질 않았다.

...

그리곤 10년이 흐른 후 내소사 구내매점(화래원)에서 발견한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이란 책속에 내가 만든 돌계단에 대한 글이 실려있음을 발견하였다.

그간의 힘들었던 모든것을 보상받았다는 기쁨에 겨워 책속의 글을 이곳에 옮겨 봅니다.

 

이지누(샘터)의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 표지 사진 

 

내소사 오른쪽 산길을 통하여 청련암 가는길...

 

내가 만든 돌계단의 시작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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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래의 글...)

관음전 큰 절에서 떨어진 곳에 있어 언제나 한갓지다.

관음전 마당에서 내다보는 풍경 또한 그윽하기 그지없어 청련암으로 오르는 길에 다리쉼하기 알맞은 곳이다.

관음전에서 청련암으로 내려서는 길에 나라 안에서 손꼽을 만한 돌계단 길이다.

두어번 오르내리고 멀리서 길을 보면 그제야 아름다움이 보였다.

 

관음전 옆으로 난 돌계단을 내려섭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만한 참으로 어여쁜 길입니다.

걷고 또 걷고

 

쉬지 않고 오르내려도 좋을 길.

드문드문 이른 낙엽 떨어진 청련암으로 가는 돌계단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아름답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이불 호청에 풀을 먹이고 저희들더러 꾹꾹 눌러서 밟으라고 했습니다.

한참을 밟고 나면 다듬이질을 해서 굵은 바늘로 꿰매곤 하셨는데

그 바늘땀은 마치 자로 잰 듯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청련암으로 가는 이 아름다운 돌계단 또한 어머니가 풀을 먹여 빳빳해진 이불 호청을 언듯 드러나지는 않게,

하지만 반듯하게 한 땀 한 땀 갈무리해 놓으셨던 것처럼

나무와 돌과 흙 그리고 낙엽이 서로 어긋나지 않게 점점이 놓여 있습니다.

골진 곳은 그곳대로 바른 곳은 또 그곳대로 서로 모나지 않게 여며놓으셨던 것처럼

이 돌계단 역시 바른 곳은 바른 곳대로 휘어진 곳은 또 그곳대로 더할 나위 없는 길입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았음에도 자연과 모나지 않는다는 것은 몹시 중요한 것이겠요.

그것은 사람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것과 같습니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지 못하는 것은 서양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한번쯤 눈여겨보셨는지요.